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오 퍼디난드 (문단 편집) === 국가대표 경력 === 19세 하고도 8일째, 퍼디낸드는 1997년 11월 15일 카메룬과의 친선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면서 첫 번째 국대 출전기록을 세웠다. 당시 잉글랜드 국대에서 가장 어린 수비수가 되었는데 이 기록은 2006년 [[마이카 리차즈]]에 의해 깨어졌다. 20세때 그는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]] 대표팀에 백업 수비수로 뽑혔지만, 본선에서는 벤치만 지켰다. 이후 [[2002 FIFA 월드컵 한국·일본]]에 참가했다. 국내 방송사에선 "페르디난드"로 표기. [[2006 FIFA 월드컵 독일]]에서도 얼굴을 비췄으며, 두 대회를 통틀어서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 잉글랜드의 2연속 8강에 공헌했다. 퍼디낸드는 [[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]]으로 10번의 월드컵 경기를 치렀는데, 잉글랜드 대표팀은 그 중 7번의 [[클린시트]]를 기록했으며 그가 피치 위에 있는 동안 겨우 4골만을 허용했다.[* 2006년 월드컵에서 스웨덴의 [[헨릭 라르손]]이 골을 기록하기 전에 교체되었다.] 2008년 3월 25일에는 퍼디낸드가 2008년 5월 26일에 있을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잉글랜드의 주장으로 뽑히기도 했다. 퍼디낸드는 잉글랜드 대표팀으로서 도합 3골을 넣었는데, 첫 번째 골은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넣은 것으로, 경기 시작 5분만에 골이 뙇 들어가 덴마크의 참패에 일조했다. 두 번째 골은 [[UEFA 유로 2008]] 예선 중 웸블리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한 2007년 9월 12일에 나왔다. 세 번째 골은 2008년 10월 12일 카자흐스탄과의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이다. 2008년 3월 25일, [[파비오 카펠로]] 감독이 새로히 부임한 두 번째 국대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찰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. FA의 발표에 따르면 리오가 주장으로 호명된 것은 월드컵에서 정식 주장을 결정하기까지 돌려가며 주장을 시켜보겠다는 카펠로의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. 그 후 잉글랜드 주장은 [[존 테리]]로 결정되었고, 퍼디낸드는 부주장에 선임되었다. 그러나 존 테리가 [[존 테리#s-7.3|사생활]] 문제로 인해 주장직을 박탈당한 후 국가대표팀의 주장은 퍼디낸드로 선임되었다. || [[파일:external/www3.pictures.zimbio.com/England+v+Platinum+Stars+Friendly+match+2010+xGqSwcflwJQx.jpg|width=500]] || || 부상 문제만 아니면 우승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본인이 부상 트러블을 일으킨 [[리오 퍼디난드|잉글랜드의 캡틴]](...) || 2010년 여름에 무릎 부상을 당해, 잉글랜드의 주장으로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[[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]]에 불참했다. 이후 2011년, 동생의 [[존 테리#s-7.2|인종차별]] 논란 사건으로 인해 [[존 테리]]와는 사이가 멀어지면서 이를 고려한 [[로이 호지슨]] 감독은 [[UEFA 유로 2012]] 최종 명단에 퍼디난드를 탈락시켰다. 당시 맨유에서도 잔부상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괜찮은 폼을 보여주었는데, 이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.[* 이후 주장 완장은 남아공 월드컵 당시 주장 대행이었던 [[스티븐 제라드]]에게 넘어갔다.] 2013년 3월, 한동안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던 퍼디난드를 호지슨 감독이 다시 발탁한다는 소식이 나왔으나 A매치 주간에 퍼디난드의 개인 일정으로 인해 결국 무산되었다. 그리고 얼마 후 잉글랜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